작년에는 안식년으로 4월부터 6월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텃밭은 거의 돌보지 못했습니다. 떠나기 전 심어 두었던 몇 포기의 고추와, 전년도에 떨어진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운 깻잎만 여름과 가을에 조금 거둘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마음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키워 보자.”

평소에는 5월 말, 빅토리아 데이 전후에 모종을 심었지만 올해는 서둘렀습니다. 5월이 되기도 전에 한국 마켓에서 오이와 쑥갓, 청양고추, 오이고추, 호박 모종을 사 와 화단과 화분에 심었습니다.

이번에는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흙을 준비하는 일에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닭 분뇨로 만든 계분을 넉넉히 섞고, 혹시라도 부족할까 싶어 비료도 아낌없이 넣었습니다. 거의 흙 반, 계분 반이라고 할 만큼 욕심을 냈습니다. 모종도 예년보다 일찍 심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수확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찾아왔습니다. 올해는 봄 추위가 유난히 오래 머물렀습니다. 밤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모종들이 서리를 맞았습니다. 잎은 축 늘어지고 갈색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모종들이 있었기에 안도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다시 푸르게 살아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자라기는 커녕 잎이 말리기 시작했고, 끝내는 타들어 가며 대부분 죽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모종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마켓에 가서 고추와 오이, 호박, 가지 모종을 새로 사 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그제야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에서 농사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거름이 부족해서만 식물이 죽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도 어린 뿌리가 견디지 못하고 타 버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순간 혼잣말이 나왔습니다. “아, 너무 잘 키우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구나. 차라리 조금 부족한 것이 낫구나” 부랴부랴 거의 죽어 가던 모종들을 거름기가 적은 곳으로 옮겼습니다. 화분에서는 기름진 흙을 덜어 내고 일반 흙을 충분히 섞은 뒤 다시 심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새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고, 잎에는 다시 푸른빛이 돌았습니다. 거의 포기했던 모종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행착오 때문에 올해 농사는 예년보다 한참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채소를 키우며 귀한 것을 배웠습니다. 채소는 많이 준다고 잘 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름도 적당해야 하고, 비료도 적당해야 하며, 물도 적당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과한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부족한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경험은 제 삶과 사역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이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이 도우면 반드시 더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삶은 늘 그런 공식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잘 세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사역했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국 지쳐서 하나님께 맡기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교회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녀를 키우는 일도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합니다. 더 배우게 하고, 더 경험하게 하고, 더 잘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면, 사랑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관계마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은 많을수록 좋지만, 사랑을 전하는 방법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필요한 때에, 필요한 방법으로 주어질 때 비로소 건강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이 이야기들이 이제는 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저 역시 하나님보다 제 열심을 더 믿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시작은 선한 마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의 욕심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농부가 작물의 상태를 살피며 물과 거름의 양을 조절하듯, 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힘을 써야 하는지,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너무 적게 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 많이 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금 느린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속도가 가장 안전함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조금 부족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때에 맞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풍성함보다 적절함을, 많이 하는 것보다 때를 따라 행하는 지혜를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