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새벽에 기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동네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급히 고개를 숙이며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뒤에서 “저 집 아이들은 인사도 참 잘한다.”라는 말이 들려왔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그렇게 애썼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남들보다 뛰어나면 더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예전에는 왜 하나님께서 하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잘해서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내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스럽고 좋았습니다.
물론 자녀가 자기만 생각하거나,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바른 길에서 벗어나려 하면 실망도 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제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잘하고 못하고 이전에, 이미 존재 자체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신앙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늘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했던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사역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았고, 더 많이 헌신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면 사랑을 잃거나 벌을 받을 것 같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런 생각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성과를 봅니다. 잘해야 인정받고, 뛰어나야 박수를 받고, 뒤처지면 쉽게 무시당합니다. 저 역시 그 가치관을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가져왔던 것입니다.
부모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녀가 큰 성공을 이루는 순간도 물론 기쁩니다. 그러나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는 평범한 시간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런 시간을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먼저 바라시는 것은 제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조금씩 더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삶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것은 여전히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저 역시 사역을 통해 큰 보람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잘하지 못한 날에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실패한 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제 아버지이십니다. 제 존재의 가치는 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든든하게 붙들어 줍니다.
부모는 자녀가 성공하는 것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더 기뻐합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나님께서도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제 마음은 참 따뜻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