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사야서를 묵상하며 반복해서 마음에 깊이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향해 끊임없이 “내게로 오라”고 호소하시는 모습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의지하며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 나라들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영혼을 깨우치시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때로 아픈 징계를 내리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그 애타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오히려 하나님께 마음이 상해, 그분께 돌아오기는커녕 더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런 유다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 복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자녀를 차마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없어,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마음을 돌이키려 애쓰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눈앞에 닥친 고난만 바라보았을 뿐, 그 사건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묵상을 하던 중에, 문득 자녀들을 키우며 겪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돌아보면 아이들에게 고마운 일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감사한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제가 아이들을 야단쳤을 때의 일입니다. ​

어린 마음에 아빠한테 섭섭하고 기분도 많이 상했을 텐데,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다가와 다시 “아빠” 하고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무언가 필요한 게 있어서였지만 말입니다. ㅎㅎ)​

특히 큰아이가 초등학교 7학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 잊히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데, 제가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지도 않고 대뜸 야단부터 쳤던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상황을 크게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억울하고 상했을까요. 그런데도 아들은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다음날 다시 “아빠” 하고 부르며 제 곁으로 다가와 주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미안함과 고마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요즘도 변함없이 “아빠”라 부르며 다가오는 자녀들을 볼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차오릅니다.​

그 경험을 통해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 이게 바로 아빠와 아들의 관계구나. 마음이 상했다고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했더라도 아버지에게 다시 오는 거구나.’​

이 깨달음은 감정에 잘 흔들리던 저에게,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준 소중한 영적 레슨이 되었습니다. ​

저 역시 하나님 앞에 죄송한 일이 있을 때면 나아가기가 주저되곤 합니다. 염치가 없어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 반대로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상황이 나빠지거나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나면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꽉 막혀버립니다.​

그럴 때면 제게 다시 “아빠” 하고 다가와 주었던 큰아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상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상한 마음을 그대로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일깨웁니다. 죄를 지었을 때도 숨지 않고 나아가야 하고, 섭섭할 때도, 이해되지 않을 때도, 두려울 때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숙한 신앙이란 하나님께 한 번도 섭섭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섭섭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완벽히 이해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하나님 발치로 나아갈 때마다 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향했던 서운함과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끊어진 줄로만 알았던 관계가 다시 촘촘히 이어지며, 마침내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과 평안이 다시 찾아옵니다.​

마음이 아프고 상했을지라도 가만히 “아버지…” 하고 부르며 그 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자녀의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