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믿어주셨습니다 – 정원준 목자

이전 간증 설교에서 저는 사역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라고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에게 있어서 또 다른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간증 설교의 제목을 통하여서 벌써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이 잡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나를 먼저 믿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잠시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누군가를 믿어준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도 정말 작은 부분에서부터 큰 문제까지 알게 모르게 믿음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물건을 살 때도, 운전할 때도,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조차도 믿음과 신뢰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지금 강단에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간증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러분 모두가 저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시기에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허락하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믿음이 없이 의심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성격이 조금 꼬인 사람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그리고 강단 앞에서만 보신다면 조금 의아해하실 수 있지만 저는 성격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 많이 힘들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랑 가까운 사람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사람들을 잘 안 믿습니다. 처음에 누군가 아무리 좋다고 표현을 하더라도 제가 보고 느낀 것만 믿기에 마음을 잘 열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떠한 사람을 신뢰하고 의지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한 번 마음을 연 후라면 한 번의 의심 없이 누군가를 믿고 신뢰하기에 정말로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에게 마음을 연 후에는 어떠한 의심 없이 맡겨진 사역과 뜻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저는 누군가를 믿는 것에 대하여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때로는 다른 이들은 저에 대하여 많은 신뢰를 보여주고 의지하여 주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의 가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4년 전인 무려 23살 때였습니다. 23살이라면 정말로 어린 나이입니다. 저희가 대학 청년교회여서 그렇지, 사회에서만 보더라도 23살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입니다. 그러한 저에게 함께 가게를 하자고 얘기하셨던 집사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러셨을까요. 아직도 돌아볼 때면 도대체 무슨 믿음을 가지고 그러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집사님뿐만이 아닌, 도대체 왜 제 주위에 있었던 그 많은 분 중 저에게 너는 못 할 거야라고 말씀하신 분이 안 계셨을까요? 왜 아무도 의심해주지 않으셨을까요?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그때 그런 의심들이 쌓였다면 지금의 저는 아마 워털루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저렇게 23살짜리한테 신뢰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신뢰하기 힘든 존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기준에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믿기 힘든 대상은 아마도 자기 자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떠한 자녀든 어릴 때부터 봐왔던 모습이 있어서인지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를 온전히 믿는 것에 대하여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또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잠시 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정말로 어릴 때부터 온전히 저와 그리고 제 동생을 믿으셨고 간섭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엄마가 우리를 믿어서가 아니라 게으름이 불신뢰를 이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저랑은 반대로 많이 게으르십니다. 누워있는 거 좋아하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고 귀찮은 거 싫어해서 남에게 잔소리하거나 관여하는
것을 애초에 싫어하는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저렇게 키울 수 있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희 엄마처럼 두 아들놈을 키우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가 얼마나 저희를 방치해두셨는지는 이 두 사진으로 증명이 됩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