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마존 단기선교 참가를 앞두고 훈련을 받고 있었던 때였기에 어느 날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의사가 된 후에 신학교에 가서 목사까지 되면 선교지에서 훨씬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지 않을까?” 의사로서 사람들의 몸을 치료하고, 목회자로서 영혼을 돌본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의사는 몇 년 노력해서 실력을 갖추면 되잖아요. 그런데 목사는 그런 직업이 아닌 것 같아요. 목사는 어떤 기술이나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목회는 몇 년 동안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신학 공부는 중요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목회는 단순히 신학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닙니다. 배운 신학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임을 경험하면서 느낍니다. 설교는 강단에서 하지만, 목회는 삶으로 하는 것이기에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아들이 말한 것처럼 목회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목사가 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학대학원 2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목회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신학대학원 3학년을 앞두고 돌연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아내는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신학생과 결혼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목회를 하지 않겠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내는 저를 원망하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올바르게 따르기를 바라며 묵묵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참 고맙습니다.
그 시절 저는 진지하게 목사가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때는 5일간 금식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면서 기도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꼭 목사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저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사람들을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무엇보다 리더십이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 저는 정말로 제 자신이 목사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신학을 공부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사역지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많은데 굳이 저까지 목사가 되어야 합니까?”
그러나 그렇게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따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 사역 자체에 대한 부담보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교회 다니는 크리스찬들이 잘못하면 그 사람들이 욕을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욕을 먹게 됩니다. 일반 크리스찬이 잘못해도 사람들이 교회와 하나님을 욕하는데, 목회자가 잘못하면 그 파급력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저 때문에 더럽혀지는 것이 너무 두렵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회의 길로 이끄셨고, 지금 우리 제일교회에서 목사의 직분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전도사 시절부터 목사가 된 지금까지 교회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다행히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욕되게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결코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특별히 경건해서도 아닙니다. 저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가리지는 말자고 결심한 것을, 하나님은 어여삐 봐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도 종종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으로도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해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십시오. 은퇴하는 날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제게 맡겨 주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게 하십시오.“
생각나실 때마다, 여러분의 목사가 은퇴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일으키지 않고 맡은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