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1) – 정원준 목자(청소년부)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나누는 내용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나누는 것이기에 혹시라도 공감하시지 못하거나 이해하실 수 없을지라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번 간증 설교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보면 최근에 제 삶 속에 어떠한 큰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을 지내오는 가운데 그 삶 속에서 찬양과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깊이 묵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작은 마음을 시작으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이렇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저희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에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닌 정말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도 역사하고 계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워털루에서 알고 지냈던 형과 대화를 하다가 형이 저에게 이러한 말을 던졌습니다. ‘너는 잘되어서 다행이야’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본인 기준에는 제가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라고 이렇게 말을 해주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뭐랄까 이게 교회 안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칭찬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하셨네’라는 표현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그 형의 칭찬은 온전히 나만을 칭찬해 주는 거여서 그런지 더 저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의 노력이 하나님의 역사하심보다 더 인정을 받은 것에 기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나서 어느 날 일을 하면서 찬양을 듣는데, 하나님께서 몸에 꽉 찬 돌직구를 하나 던지시는 거예요. “지금의 네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네가 열심히 해서 이룬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불렀던 은혜라는 찬양이 바로 그 찬양이었습니다. 이 찬양에 가사 중에 이러한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게 아니라 은혜였소”. 이 찬양이 그렇게 저의 마음과 머리에 꽂히더니 듣고, 또  다시 듣고 그렇게 반복하며 이 찬양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제 자신이 걸어왔던 삶의 순간들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가운데, 단 하나의 사건만을 보는 것이 아닌 내 삶 속에서 일어났었던 여러 사건을 보면서, 단순히 지금의 위치가 내 열심으로 이룬 게 아닐뿐더러,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네! 라는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큰 것을 보게 되면 작은 것들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도 이 계기를 통해서 스스로 많이 던져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게에 대한 예를 잠시 들자면, 가게를 통해서 지금 내가 이렇게 먹고 살 수 있는 게 단순히 나랑 김현민 자매님이 잘 맞고 잘하고 있어서일까? 만약에 가족들이 우리를 안 믿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에 은교가 혼자서 잘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일을 하다가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에 공부를 못해서 워털루에서 못 버텼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제가 지금까지 한 번쯤은 ‘아 감사하네’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서 지금의 내 삶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일 하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구나라고 다시금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마음을 붙잡다 보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셉에 관한 내용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인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이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기에 형들의 시기와 질투에 결국 이집트로 팔려 가게 됩니다. 그렇게 이집트에 노예의 신분으로 왔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어서 이집트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을 통하여 요셉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하지만 본인이 저지르지도 않았던 죄로 인하여 결국에 그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그 당시에 함께 투옥 생활을 한 두 명의 시종장의 꿈을 해몽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요셉은 두 명의 시종장들의 꿈을 해석해주기 전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40절 8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해몽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네.”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요셉은 꿈의 해몽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인 14절에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종장께서 잘 되시는 날에,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나를 따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말씀드려서, 나도 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 해몽의 능력을 주시는 거라고 하였지만, 이 순간에 요셉은 그들이 잘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꿈을 해석하여준 나를 기억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를 감옥에서 꺼내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감옥 룸메이트들인 두 명의 시종장들이라고 알게 모르게 요셉은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술을 따라주는 시종장은 요셉의 해몽처럼 자기의 직분을 회복하지만, 요셉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41장 1절에 나오듯이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게 됩니다.

이 시간 동안 요셉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에서, 형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리고, 그래도 어떻게 해서 경호 대장의 눈에 들어 그 집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리까지 앉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모함을 받아 그 자리를 빼앗기고 다시 감옥에 갇혔지만, 이제 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 기회마저 하나님은 외면하셨습니다. 이렇게 조금 잘되려고 하니 넘어지고, 다시 좀 풀리려고 하니 넘어지는 반복을 저도 제 삶 속에서 경험을 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워털루에 다시 돌아왔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 때에 스크린샷으로 찍어두었던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제 개인 잔고에는 20센트가 남아있었습니다. 이 때 제 생각은 이것보다 더 바닥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찍어두었던 것입니다. 돈을 꽤 많이 모아서 워털루에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돈이 빠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기를 당한 적도, 도박을 한 것도, 이상한 곳에 투자해서 날린 것도 아니니,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이제 저 남은 잔고로 한 일주일 반 정도를 버텨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게 이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스토리인데, 저 마지막 transaction이 중국마트에서 쌈장을 하나 산 것입니다. 그래서 한 일주일 반 정도를 알바를 안 나가는 날에는 식당에서 싸온 밥이랑 쌈장 이렇게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랑 지인들에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하지, credit card를 좀 쓰면 되지’. 그때 뭐 당연히 credit card는 리밋에 있었고,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에게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동생도 학교를 다닐 때 때론 돈이 없어서 밥이랑 소금만 먹고 버티던 시기가 있었다고 나중에 말해주더라고요. 그렇게 저희 형제는 미련할 수도 있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상황들을 견뎌 내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상황을 이겨내 보려고 선택한 방법은 알바를 늘리는 거였습니다. 같은 곳에서 알바 시프트를 늘리고, 그게 부족하면 알바를 다른 곳에서 하나 더 추가해서 같이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수업을 한두 개만 들을 수 밖에 없었고, 또 어쩔 때는 듣지 않았던 학기들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게 이상한 게 알바를 늘린다고 돈이 모이거나 저런 상황에서 깨끗하게 벗어나지 못하더라고요. 한때는 은행에서 내 돈을 몰래 훔쳐 가는 거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돈을 계속해서 벌어오기는 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어딘가로 새어 나가는 상황들이 펼쳐지게 되더라고요.

다음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