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서 놀고 있던 우리집 강아지 구찌가 짖는 소리가 들려 거실 문을 열고 불렀습니다. 구찌는 번개처럼 달려와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저를 반겼습니다. ‘역시 우리 구찌, 주인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뿌듯했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구찌의 시선이 제 얼굴이 아닌 제 손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손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모습을 보니 분명했습니다. 구찌가 좋아한 것은 제가 아니라 제가 줄 간식을 기대해서였던 것입니다.
“이런…네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먹을거 때문이었구나. ㅋㅋ…” 구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 혹시 나도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무엇인가에 더 마음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면 저 역시 구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실 무엇인가에 관심을 많이 가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도의 무게중심이 하나님께서 주실 것들에 기울어져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응답이 빨리 오면 기뻐하고, 지연되면 실망하고, 때로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서운해하기까지 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구찌가 제 손에만 관심을 보이고 저라는 사람에게는 무관심했던 것처럼, 저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만 눈이 쏠려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았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도 이런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지만, 정작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 그 분보다는 또 다른 기적, 또 다른 떡에 있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시편 73편의 아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73:25)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 자체가 우리가 사모해야 할 대상임을 아삽은 고백합니다.사도 바울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무엇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요즘도 구찌를 부르면 내 손을 쳐다보다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 왔던 길을 휑하니 돌아갑니다. 그런 구찌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순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종종 깨닫습니다. 물론 우리의 필요를 아뢰고 간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의 중심에는 하나님 자체에 대한 사랑과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주님, 주님이 주시는 축복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님 자체가 좋습니다.” “응답도 감사하지만, 응답해 주시는 주님이 더 감사합니다.” “주님의 선물보다 선물을 주시는 주님이 더 소중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을까요? 조건 없는 사랑,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 말입니다.
구찌는 오늘도 제 손에서 나올 간식을 기대하며 꼬리를 흔들겠지만, 저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때문이 아니라, 저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자체 때문에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제게 주시는 모든 것들은 감사하지만, 그 무엇보다 주님 자체가 저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